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뉴스를 보니 가장 큰 화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도중 일어난 중국 시위대의 폭력사태였습니다.
이러한 폭력사태가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현재 티벳을 둘러싸고 중국당국과 티베트 망명자 및 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 충돌사태입니다.
티베트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독립 및 자유화에 대한 요구와 그에 대한 중국당국의 총,칼을 이용한 무차별적인 탄압. 그리고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와 마침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올림픽 성화봉송문제가 뒤엉키면서 전세계 국민들에게 축제로 보여져야 할 성화봉송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로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티베트 문제에 대한 글은 인터넷에 많습니다. 물론 아직도 티베사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는 국민들은 드물지만 티베트 사태가 먼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이번 성화봉송 사건 도중 중국 유학생 그룹이 티베트를 옹호하는 한국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서 한국과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이번 사건은 민족vs민족의 대립구도로까지 발전할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조금은 다른 관점의 이야기입니다. 비단 이번 사태뿐만이 아니라 최근들어 강화되고 있는 중화주의,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 중심주의에 대한 경고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된 것은 http://ddokbaro.com/1579 글을 읽고 이것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방어적 민족주의와 공세적 민족주의는 분명히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하고, 특히나 중국의 민족주의는 타 국가들의 민족주의와는 그 궤 자체를 다르게 하는 점을 잊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 중화사상이란?
현재의 중국인들의 의식의 흐름이나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자세, 그리고 중국인들의 격앙된 민족주의적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화주의란 무엇인가?
중화주의라는 단어를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런 결과를 보여준다.(중화사상으로 검색했을 경우를 인용한다)
중화사상은 중국에서 나타난 자문화 중심주의적 사상으로서, 중화(中華) 이외에는 이적(夷狄)이라 하여 천시하고 배척하는 관념이 있기 때문에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도 한다. 중(中)은 ‘중앙’이라는 뜻이며, 화(華)는 ‘문화’라는 뜻으로, 중화(中華)는 자신들이 온 천하의 중심이면서 가장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선민(選民) 의식을 나타낸다. 그리고 자신들 이외의 타자들을 남만(南蠻)·북적(北狄)·동이(東夷)·서융(西戎)으로 구분하여, 중국의 천자(天子)가 모든 이민족을 교화(敎化)하여 세상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천하국가관’을 낳았다.
간단히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며, 그 외 이민족들은 중화사상의 감화를 받거나 아니면 중화사상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여기서의 지배란 단순한 영토적 지배를 뜻하거나 피압적 지배를 뜻하지는 않는다. 중국이 가장 앞선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서 열등한 문화를 가진 타 민족들을 교화하고 그들을 정신적 지배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것은 근 1천년이상 아시아를 운영해오던 중국왕조의 기본 철학사상이다. 중국을 가장 중심에 두고 다른 주변 국가들을 필요에 따라서 정신적, 또는 직접적 지배권을 행사하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체(그 당시의 세계 전체)가 유기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중화사상의 목적이다.
고대나 중세시대 아시아를 지배하던 이 중화사상을 꼭 나쁘게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는 현재가 아니었고 여러 국가들 중 중국이 가장 선진화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가장 강대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의 개념을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천년이상 퍼트렸던 것이고, 각각의 나라 입장에서는 서로간의 극심한 영토적 분쟁 없이 중국식 문명을 받아들임으로서 각각의 나라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유럽과 같은 끊임없는 전쟁을 겪지 않을 수 있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문제는 이러한 고대 사상을 21세기 아시아에 적용시키려 한다는 것.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현재의 중국이라는 국가의 기형적인 모습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2. 국가자본주의로서의 중국
먼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현재의 중국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불러야 하는가? 자본주의 국가라고 불러야 하는가?
현재의 중국은 정치체제는 공산주의 체제를 취하고 있고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체제를 취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이것을 아무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건 애초 병립이 불가능한 체제이다.
공산주의 체제는 단순한 정치체제가 아닌 사회 전체를 통칭하는 틀의 개념이다. 특히 공산주의 체제에서 그 체제의 성격을 명확히 규명짓는 것은 경제 체제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틀이라니...
경쟁과 이윤 추구를 명확히 보장해주는 공산주의 체제가 과연 공산주의 체제인가? 답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지금의 중국은 일당 독재의 자본주의 국가이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당연스레 결합하고 있는 것에 반해 중국은 그것이 아닌 자본주의만이 기형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다른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군부 독재 국가들과 비슷하게 보면 될까? 그것또한 아니다. 중국의 정부체제는 군부나 특정한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을 중심으로 이미 국가 전체에 걸쳐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체제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나는 지금의 중국은 국가 자본주의의 가장 극대화된 형태라고 본다. 철저하게 자본의 이익에 따라 복무하며 국가는 그 자본의 이익을 통해 국가 자체의 성장을 꾀하는 시스템. 19세기 중상주의 국가의 21세기형 재림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자본주의체제하에서 개인의 인격과 존엄을 철저히 무시된다. 국가의 이익과 국가 단위의 효율성이 가장 최우선될 뿐 개개인이 누리고 보장받아야 할 인권은 국가라는 이름 하에서 뭉개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아이러니가 나온다. 이미 90년대 천안문 사태에서 봤듯이 현대화된 세계속에서 단순한 통제만으로 국가자본주의의 틀을 유지시키는 것은 한계에 부딛힐 수 밖에 없다. 유학이 되었든, 아니면 무역이 되었든 자본주의를 도입한 이상 외부와의 교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 당국이 취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중화사상의 복원이다.
3. 위대한 중국의 복원
중화 사상의 복원을 통해 중국 민족의 우월성을 자국 내 국민들에게 고취시키고 그러한 중화사상을 다시 복원시키고 위대한 차이나의 이름을 다시금 아시아 각 민족에게 각인시키고 그들을 정신적 지배대상으로 다시금 복귀시키기 위한 국가역량의 강화를 국민들로 하여금 당위적으로 인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강화는 어느 국가를 만족하고 국가권력의 강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나보다 우리, 나보다 민족을 우선시 두게 되는 순간, 각 개인은 민족의 이익을 위해 일정정도의 희생을 수반한다는 것을 묵인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것을 지난날의 독재국가들이 강제적인 총,칼 및 제도로 얻고자 했다면 지금의 중국은 풍부한 물질적 혜택과 국수주의를 통해 인민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동의하게끔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만약 중화사상이 없었다면 중국 내부에서의 반발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위대한 중국이라는 이름하에서 커져가는 자문화중심주의 및 타 국가에 대한 적대적 민족주의는 국민들의 자발적 복종이라는 기대효과를 충분히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화사상내에서는 영토적으로 중국내에 포함되어 있는 타 민족들은 어디까지 중화사상안에 흡수되어야 할 중화인일 뿐이다. 그들의 개별적인 다양성과 민족성은 중화사상이라는 큰 틀안에서 융화되어야 할 것이지 개별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대사이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다 같은 중화인일 뿐인데 각각의 민족들이 독립을 외치고 자치를 외치는 것이 오히려 이해 못할 대상일 뿐이다. 과거 중국왕조들이 취해왔던 정책과 똑같은 개념에서 그들은 일을 진행시킬 뿐이다.
4. 나는 중화사상을 거부한다.
중화사상은 기본적으로 공격적 민족주의이다. 더 쉽게 말하면 타 민족을 자신의 지배영향력 아래 두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하는 민족주의이다. 이러한 중국의 민족주의를 타 민족들 특히 과거 식민지배아래 있었거나 타 민족의 지배아래 있으면서 방어적으로 자연 생성된 민족주의와 같은 급으로 비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과 중국의 중화사상은 사실상 이란성 쌍생아나 마찬가지인 사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과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를 같은 급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마찬가지로 중국의 공격적 민족주의는 그저 민족주의라는 개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중화사상은 앞서 말한것과 마찬가지로 주변 민족들의 자발적, 또는 강제적인 복종을 기본 전제로 생각하는 사상이다. 그것에 동의하는 순간 우리들의 문화적 다양성과 독립성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것과 틀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중국인들의 민족주의 , 더 엄밀히 말해서 중화사상에 동의할 수 없다. 더구나 중국이 내부에서 타 민족들에게 취하는 폭력적인 민족 탄압에 대해서 동의할 생각도 전혀 없다. 마치 예전 왕조와 같이 부를 쌓고 그 부로 국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그 확대된 영향력으로 타 민족을 지배하려 드는 미친 중국의 폭주는 우리가 막아야 할 대상이지 이해해야 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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